2009년 오사카 여행 : 오사카성과 산타마리아호

 

 

오사카성


도쿠가와이에야스(덕천가강)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오사카성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고 어떤 역사가 담긴지 알고 있을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 뒤를 이어 전국을 제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우리에게 좋은 감정으로 다가올리 없는 인물임에는 분명하지만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난 격으로 바닥부터 시작해 일본 최고의 세력가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오다 노부나가의 전국 제패가 미완에 그친것이라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을 사실상 통일한 인물이므로 평화의 시대가 찾아오자 할 일을 잃은 무사들의 불만이 폭주해 그 불만을 해외로 돌리기 위해 벌인 일이 조선 침공이었고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임진왜란이었다. 하지만 이 무리한 침공으로 인해 도요토미가문은 몰락을 맛보게 되는데 그 최후의 현장이 오사카성이다.

 

세키카하라 전투에서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를 보좌할 이시다 미츠나리가 대패하면서 도요토미 가문은 영지가 대폭 축소되었고 그마저도 실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사카성을 침공하면서 끝내 히데요리 모자는 오사카성에서 자결을 하며 도요토미 가문의 짧은 역사는 끝나게 된다.

 

 

 

그렇지만 이에야스도 난공불락의 오사카성을 함락 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군을 이끌고 온 이에야스였지만 오사카성은 이 사진에서 보듯이 성주변을 방대한 규모의 해자가 둘러싸고 있고 성벽높이도 매우 높기에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결국 잔머리를 썼던 이에야스는 히데요리에게 화친을 보내 오사카성 주변의 해자를 모두 메우면 군대를 물리겠다 했으나 히데요리가 해자를 메우자 마자 도쿠가와 가문의 군대는 오사카성 공략을 하게 된다.

 

남의 나라를 침공해 죄없는 백성들에게 숟한 악행을 저지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업보가 그런 비참한 최후를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주유패스를 쓰면 이 열차(?)를 타고 성입구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왕복이 무료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아무튼 다리도 아픈데 유용하게 잘 썼던 기억이 난다.

 

 

사실 간사이 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성은 히메지성일 것이고 오사카성은 복원 과정을 거치며 원모습을 잃었고 미적으로 그렇게 아름다운 편은 아니라 한국인이 봤을 때는 크게 감흥이 없는 곳으로 분류된다.

 

입구에는 저렇게 손을 씻을 수 있는 수도시설이 있었는데 우리는 한국의 약수 같은 개념인 줄 알고 물을 마셨다고 나중에 사람들이 다 손만 씻고 가는 걸 보며 문화의 차이를 느꼈다.

 

 

오사카성 내부는 들어갈 수 있지만 여기서 보는 전망이 그리 좋지 않다 들었기에 굳이 안까지는 가보지 않기로 했다. 그냥 아래 같이 사진만 좀 찍다가 내려온 것으로 기억한다.

 

 

 

 

산타마리아호


오사카성에서 유명한 유람선으로는 산타마리아호가 있다. 출발지는 전날에 보았던 가이유칸 바로 옆 건물에서 가능했다.

 

 

 

산타마리아호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탐사할 때 탑승했던 배로 이 유람선 역시 그런 컨셉을 따와서 운행하고 있었다. 역시 크게 볼 것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다리가 아프고 피곤했으므로 좀 쉬어가는 의미로 일정 중간에 껴 넣었다.

 

 

일단 선실에 들어가봤지만 딱히 뭐 크게 꾸며 놓은 것도 없어서 대강 대강 둘러보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와도 사실 주변 풍경이 특별할 것이 없었다. 차라리 우리 한강 유람선을 타는게 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항구 주변이라 공업지구 등의 풍경이 보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이틀째라고 눈에 들어오는 몇 몇 건물이 있었다. 다리와 관람차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제법 인상적이었다.

 

 

결국 별로 풍경을 볼 게 없어서 컨셉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 이것도 주유패스 뽕 뽑기 위해 탔는데 그게 아니라면 굳이 타라고 추천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지금도 주유패스로 탈 수 있는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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